(잠 15: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고등학교 때 교감선생님께서 교내방송하는 마이크만 잡으면 하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삼사일언(三思一言)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말하기 전에 항상 세 번 생각하고 하라는 것입니다. 알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는 것이 바로 우리의 '말'인것 같습니다. 행동보다는 말이,또 말보다는 생각이 더 조절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신중해야 하는데, 가려서 해야 하는데, 경우에 합당해야 하는데, 남을 고려해야 하는데, 아는 만큼 잘 되지 않는것이 우리의 말입니다. 그래서 살면서 가장 많이 실수하게 되는 경우가 바로 우리의 말 때문입니다. 말은 보이지 않는 것인데도 그 파워는 대단합니다. 그저 한 마디 말에 불과한데, 그냥 한 번 내 뱉으면 사라지..
(잠 14:10) 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은 타인이 참여하지 못하느니라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족이 있고 친구나 공동체가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입니다. 하지만 오늘 잠언은 사람 안에 있는 고통과 즐거움은 자기만 아는 것이고 타인이참여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고통과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는 있지만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하여도 그 사람 마음에 있는 것을 똑같이느낄 수는 없습니다. 내 마음의 고통을, 나의 외로움을, 내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진정으로 알아주는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해 인간은 정말 고독한 존재입니다.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
(잠 13:20)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나는 누구와 동행하며 사는가?' 참 중요한 문제입니다. 동행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면 나도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면 나도 그 해를 같이 받는다고 오늘 잠언은 말씀합니다. 누구를 자주 만나고 가까이 지내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요즘 나에게 일어나는 어떤 감정이나 생각이,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어느 누구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내가 동행하는 그 누구 때문에 오늘 하루 내 마음이 생명을 누릴 수도 있도 사망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기분 좋은 하루가 될 수도 있고 엄청 짜증나고 우울한 하루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내 인생이 생명을 낳고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영광스러운 삶이 될 수도 있고 잡초와 가라지만..
(잠 12:16)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주님을 모시고 사는 자의 삶은 두 가지 방향에서 다른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안으로 자신을 향하여서는 냉철하고 준엄해야 합니다. 때로는 혹독하리만큼 엄격한 기준으로 자기 자신을 살피고 훈련해야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밖으로 타인을 향하여서는 관대하고 너그러워야 합니다. 때로는 지나치리만큼 베풀고 용서하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미련한 사람은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너그럽고 늘 기다리고 용서합니다. 그러면서다른 사람에게는 엄격하고 혹독합니다. 관용을 베풀줄 모릅니다. 그 사람에 대하여오래 참지 않습니다.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을 먼저 고려합니다. 그 사람의 감정과 입장을먼저 생각합니다...
(잠 11:24-25)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식과 다른, 성경이 말씀하는 역설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통하는 방식과 반대로 해야하는 경우입니다.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낮아져야 합니다.섬김을 받고자 하는 자는 섬겨야 합니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어야 합니다. 받고자하는 자는 먼저 주어야 합니다. 오늘 잠언도 그런 맥락입니다. 세상의 상식으로는 아껴야 부하게 됩니다. 남에게는인색할 망정 과도히 아끼고 챙기고 모아야 내 것이 되고 부하게 됩니다. 하지만 성경은 반대로 말씀합니다. 아끼는 것이 아니라 흩어 나누어 주어야 부하게 된다는것입니다. 지나치..
(잠 10:2) 불의의 재물은 무익하여도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같은 돈이지만 누가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악인에게는 아무리 많은 돈이 있다고 하여도 그 돈은 무가치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악인은 돈 자체가 목적입니다. 그래서 가질수록 더 가지려고 합니다. 아무리 가져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아무리 먹어도 만족함이 없는 거머리처럼 계속해서 "다오다오, Give! Give!" (잠 30:15) 합니다. 돈이 그 사람에게 성취감, 만족감, 행복감을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많으면 자신에게 유익할 것 같은데 잘 살펴보면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또한 악인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가지려고 합니다. 어떤 불의한 방법도서슴치 않습..
(잠 9:4)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잠 9:16)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오늘 잠언 9장은 재미있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여섯 절씩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1-6절) 지혜의 초청, (7-12절) 지혜로운 자와 거만한 자의 반응, (13-18절)어리석음의 초청 지혜도 우리를 부르고, 어리석음도 우리를 부릅니다. '이리로 오라, 여기가 정말 즐겁고 행복한 길이다, 이 길로 가는 것이 현명하다' 나 자신은 어느 길을 따라가고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나는 지혜로운 자인지 거만한 자인지 살펴야 합니다. 지혜가 말합니다. "내 식물을 먹고 내 포도주를 마시라"(5절). 어리석음도 말합니다. "도둑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잠 8:27)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을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잠 8:30)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잠언 8:22-31까지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의 많은부분이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오래 전인데 이미 이런 말씀이 기록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이 말씀은 신약의 다음의 말씀과 동일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 1:1-3)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아니 그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