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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본문: 막 14:1-9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8절)

 

값비싼 향유 옥합을 아낌 없이 깨뜨려 예수님께 부어 드릴 수 있었던 이 여인의 마음이 부럽습니다. 저도 아마 그 자리에 있었다면 향유의 값을 계산하며 누구보다 앞장서서 잘못된 일이라 목소리를 높였을 것입니다.

 

값으로 계산이 되는 가치가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값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가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는 상대적인 비교로 그 값이 매겨집니다. 하지만 비교할 수 없는 가치, 가늠할 수 없는 가치, 가치라는 개념도 어울리지 않는 가치 너머의 절대적인 가치가 있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계산이 된다면, 비교가 된다면,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닙니다. 계산 없이 줄 수 있는 것, 아무런 조건을 바라지 않고 줄 수 있는 것, 무엇이든지 아낌없이 줄 수 있는 것, 그것은 사랑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앞에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곧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셔야 합니다. 이유는 오직 하나,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제 곧 십자가를 지실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앞에 있는 많은 사람들, 예수님의 그 사랑을 헤아리는 자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가시는 길을 이해하는 자가 없습니다.

 

오직 이 여인만이 그 사랑을 아는 듯 아무 말 없이 향유 옥합을 가져와 아낌없이 부어 드립니다.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듯 온 사랑을 다 쏟아 드립니다. 무엇인들 못 드리겠습니까? 무엇이 아까웠겠습니까? 옥합이 열 개여도 그 마음을 다 표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향유의 기름이 예수님의 머리를 타고 흘러 내려올 때 그 여인의 마음도 그대로 예수님께 전하여졌을 것입니다. 향유의 향기가 더 드리지 못하여 안타까워하는 애절한 그 여인의 마음과 함께 온 집 안을 덮었을 것입니다.       

 

그 여인과 예수님만이 느꼈을 그 사랑, 그 사랑의 마음이 부럽습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그 여인이 부럽습니다. 예수님께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그 마음이 부럽습니다. 예수님과 느꼈을 그 긴밀한 사랑이 부럽습니다. 

 

고난 주간 첫 날, 주님 앞에 서 있는 내 자신을 다시 들여다 봅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누구신가? 나는 예수님 앞에 누구인가? 아직도 무엇을 계산하고 있는 저들의 모습이 내게는 없는가? 나는 예수님의 그 사랑을 이해하고 있는가? 그 여인의 애절한 사랑의 마음이 내게는 있는가? 

 

지금 다시 그런 자리에 내가 있게 된다면, 내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그 여인처럼 할 수 있겠는가? 

 

십자가는 사랑입니다. 가치의 헤아림 없이 주신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받을 아무런 가치가 없는 나에게 주신 무조건적 사랑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을 율법적인 개념으로 교리적인 이론으로 이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십자가의 사랑을 어떻게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옥합을 드린 사랑을 어떻게 계산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 가슴이 더 뜨거워지면 좋겠습니다. 값비싼 옥합을 아낌없이 드릴 수 있는 애끓는 사랑이 우리 가슴에도 타오르면 좋겠습니다.